철저하게 검증된 전생의 사례가 정말 존재하는가? 전생의 기억은 어떤 계기로 떠오르는가?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윤회하는가? 윤회의 주체는 지금의 나와 같은가, 다른가? 생과 생의 중간에서 영혼은 어떤 경험을 하는가? 그리스도교는 왜 윤회론을 부정했는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임사체험자들은 임사체험 이후로 윤회론을 믿게 되었거나 최소한 마음을 열고 그것을 탐구해 볼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임사체험자들은 윤회론자들이 늘 주장해 온 바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즉 우리는 영원한 존재이고 우리의 진짜 고향은 이곳이 아니라 영적 세계이며 우리가 말하는 소위 죽음은 사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종의 공중제비일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여기에 윤회론자들은 우리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라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윤회의 본질(크리스토퍼 M. 베이치) 정신영역에서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종교학자가 쓴 이 책은 환생의 증거와 의미, 카르마와 생명망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제시하며, 윤회론에 관해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윤회의 증거들을 늘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윤회론을 인정하고 그 의미를 들여다볼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온전히 이해되고 충만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 과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윤회에 관한 연구와 경험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윤회가 인간의 영적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논리 정연하게 펼칩니다.
그는 윤회에 관련된 새로운 연구들을 종합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이 우주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둘째. 전생체험은 그 당사자로 하여금 나는 영원한 존재이며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는 진실을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앎으로써 받아들이게 한다.
세쩨. 우리는 언제나 안전하다. 그 무엇도 우리를 삶의 본질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으며 삶의 시련들 또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윤회의 증거는 자발적인 기억, 환기된 기억, 사이키델릭 경험, 임사체험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전생기억을 가진 어린이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전생에서의 신체적 특징이나 사건들을 확인하여, 윤회의 신빙성을 입증하였다. 헬렌 윔바크 박사는 전생 퇴행 요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생체험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들의 전생에서의 문화나 언어 등을 검증하여, 윤회의 실재성을 보여주었다.
--왜 우리는 육체에 근거한 에고라는 하나의 파편에 얽매인 채 그것이 전부인양 알고 살게 되는가? 이런 기억상실의 목적은 뭘까? 간단히 답해서 그것은 배움을 가속하기 위해서 있는 듯 보인다. 기억상실이 만드는 단절은 우리의 급속한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성장은 범위가 너무 넓어서 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를 어떤 한정된 시간 내에 서로 다른 경험들에 완전히 몰입시킴으로써 배움을 가속하기 위해 이처럼 상대적으로 짧고 의식적으로 분리된 삶의 구조가 고안된 듯하다. 특정한 몸 특정한 사회관계, 특정한 문화, 특정한 이력, 특정한 역사 속에서 한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그와 전혀 다른 조건들 속으로 투입된다. 현생에 맞춰진 초점을 넓혀보라 이런 생이 수백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부와 가난 두려움과 용기 갈등과 평온 등등 인간의 모든 경험을 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예술가이고 전사이고 성직자이고 정치인이고 개혁가이며 또한 소작농이다. 우리는 남자이자 여성으로서 양성의 모든 비밀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지역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모든 지역과 문화를 잘 알고 , 하나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가 발 담갔던 모든 시대를 잘 안다. --
--중요한 불교 경전인 법구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비롯한 존재이다. 과거생부터 현생까지의 당신 마음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끝없는 인과의 사슬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경험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우리의 삶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왔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리의 몸, 외부환경, 비극과 행운 등 그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왔다. 삶의 중요한 요소 들은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준비된 것이다. 지금의 우리의 적성과 재능은 오래전부터 갈고 닦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의 갈등과 문제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주제의 경험들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험할 바를 스스로 선택해 가는 일종의 에너지장이라 할 수 있고 이 에너지장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매 순간 우리는 경험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우리가 해온 무수한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한 우리의 선택들에 의해 더욱 확고해지거나 수정된다. 경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내적, 주관적 경험 우리의 관심과 소질 염원 꿈 두려움 등등 이런 것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삶의 외적 객관적 조건에 해당된다. 이 두 추측면이 서로 엮임을 써 하나의 카르마 형태가 된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특정한 감정 에너지를 담은 경험을 창조해 낸다. 우린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수집한 에너지이다.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보태며 살아간다. 그것이 소위 우리의 에너지총합이다. 이 에너지의 총합에 의해 우리 삶의 주제가 결정된다. 유쾌함을 선택하면 유쾌한 에너지가 쌓인다. 불안함을 선택하면 불안한 에너지가 쌓인다. 우리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일종의 분위기를 흡수한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경험 저장소이다.--
--모든 욕망을 내버린 삶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항상 하나의 욕망을 내려놓자마자 새로운 욕망을 집어 든다. 원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자유롭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자리걸음이 우리로 하여금 환생을 반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다면 우리는 자연히 하나하나의 선택을 아주 신중하게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카르마와 윤회의 작용을 배우기 전까지 우리는 별수 없이 많은 욕구에 휩쓸리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집착해 왔을 것이다. 그것이 유쾌한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 간에 최대한 많은 카르마를 해소해야만 우리의 영적 잠재력이 더 빨리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