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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허지원 )

자존감은 유니콘 같은 신화 속 동물이며, 높고 낮음의 기준은 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자.

우울증은 뇌에 흔적을 남기는 질병이며, 우울한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자.

스트레스는 적절한 수준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과도하면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습관과 기술을 익히자.

자신의 과거는 자신의 미래가 아니다. 과거의 상처와 갈등을 극복하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자.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성취나 인정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허지원 작가님의 심리학 도서입니다.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가상의 내담자들과의 상담 에피소드를 통해 심리적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의 말을 전합니다.

 

 

--윌리암 제임스는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공의 수준을 높이거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를 거처 1970년대를 접어들면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자기를 무조건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트렌드에 따라 , 그리고 낮은 자존감이  낮은 학문적 성취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당시에 섣부른 예측에 따라 자존감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인생의 성공을 설파하는 자기 계발 도서 작가들의 선무당식 진단이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저조한 성취 대인 관계 문제 더 나아가 살면서 부딪치게 되는 각가지 심리적인 문제들은 모두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을 폭발적을 퍼뜨려  개인의 책임을 끝없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더 노력하지 않은 탓은 아닐까요,? 당신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나요.?  이때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개인의 자존감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심지어는 서너 살짜리 유아들의 자존감까지 측정한다는 검사지까지 나오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절대적 수준의 낮은 자존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각하는 본인의 자존감 자기 가치관이 낮을수록 정신건강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향성이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기 평가에 기반합니다.  우리는 그럭저럭 대충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면 됩니다. --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화는 표출할수록 더 커진다.  카타르시스는 타인의 이야기를 관찰할 때에는 적용될 수 있을 지몰라도 이런 식의 정리되지 못한 감정표현은 불쾌감과 죄책감을 더 높일 뿐입니다. 아무 소득도 방향도 없는 정서 표현을 왜 계속하고 있나요?  그렇게 해서 분이 풀릴 것 같으면 막지는 못하겠지만, 풀리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척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표면적인 자신감만 높은 사람들의 태도를 따라 하면 안 됩니다. 내공 높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할법한 행동이 나의 표면에 스미도록 매일 꾸준히 연습하세요

자기의 삶에 충분히 집중하는 척하기. 중립적인 이야기에도 과잉방어하고 정색하는 패턴을 억제하고 설사 마음불편해졌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불편한 상황에서 유머로 적절하게 받아치는 척하기. 혼자 밥을 먹거나 홀로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척하기. 실패 및 성공의 가능성이나 주위의 평판에 태연 한척하기. 마지막으로 모든 일들을 일일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드러내지 않기.   이런 척은 어느 순간 여러분에게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가면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가면은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혼자 있을 때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자신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의 자신은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집에서 있을 때의 모습과 똑같은 태도로 중요한 모임에 참석했다면 그것이 병리적인 상태입니다.  또는 당신이 친구 A를  B에게 처음 소개 했는데  A가 거짓된 자기를 보이기 싫다며 집에서 하던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당신도 B도 당신의 무례함에 매우 당혹스러워할 것입니다.  자신만 아는 자기와 타인에게 보이는 자기가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여러 모습 중에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힘든 부분이 있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자기 혼자서만 간격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낮은 자존감과 관련된 가면들은 당신과 당신의 심리치료사만 알면 족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가면들을 보여주고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성격이라는 말이 페르소나 즉 가면에서 파생되었듯이  우리의 성격은 원래 다차원적이고 복잡합니다. 꽤나 사교적이지만 동시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타인에게 공감을 잘하지만 누구보다 타인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게 우리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괜찮아요.   성격의 발로는 낮은 자존감의 발로가 아닙니다.  마음을 할퀴며 아파할 문제도 아니고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더욱더 아닙니다.  자존감 높아 보이는 가면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사회성 좋아 보이는 가면이 있어도 됩니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그런 가면은 얼마든지 가져도 됩니다. 우리의 가면은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가식도 아니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위선도 아닌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능이고 기술입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의 책표지

 

 

시중에 범람하는 자기 계발 도서들이 지어낸 자존감의 허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존감은 도대체가 그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높은 자존감이라는 프레임은 허상에 불과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신기루가 우리의 자존감을 낮추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상태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삶의 맥락과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자기 가치관을 말합니다 또한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는 유동적인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