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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르마와 환생 ( 요가난다 )

 

과거의 카르마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건,

긍정적인 생각, 명상, 기도, 봉사 등을 통해 나쁜 카르마를 정화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카르마와 환생 (  요가난다  Paramahansa Yogananda, 1893-1952)

요가난다는 인도의 유명한 구루(스승)이며, 서양에 요가와 명상을 전파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2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셀프 리얼라이제이션 펠로우십(Self-Realization Fellowship, SRF)을 설립하여 명상과 크리야 요가(Kriya Yoga)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한 요기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Yogi)는 영적 수행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카르마와 환생》은 단순히 철학적인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카르마란 무엇인가?

우리가 자연에서 원인과 결과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물리학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같은 자연법이 인간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일단 모든 것의 바탕이 의식임을 이해한다면,  인간 또한 자연의 질서에 속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  스스로 속이지 마시오.  하느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외다.   사람들이 무엇을 심어도 그 심을 것을 거둔 터인즉 ( 갈라디아서 6장 7절 )   이것이 카르마 법칙이다.  당신이 악을 심으면 고통으로 악을 거둘 것이고 선을 심으면 기쁨으로 선을 거둘 것이다. 

 

카르마를 이해하려면 생각이 물질임을 알아야 한다. 끝까지 분석해 보면 우주 자체가 물질이 아닌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물질은 생각의 힘에 반응한다.  의지력이 에너지에 지시하면  에너지가 물질에 작용하는 것이다.  물질이란 사실 에너지다. 

 

영혼은 자유다

영혼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설령 최악의 주인이라고 해도 영원히 정죄당할 수는 없다.  요한 한 원인이 무한한 결과를 빚을 순 없는 일이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오용해 스스로 악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하느님의 아들이 있다.  왕자가 술에 취하거나, 악몽에 빠져 스스로를 가난뱅이로 여길수는 있지만, 중독상태에서 벗어나거나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자신의 미몽을 벗어버린다.  죄 없이 완전한 영혼도 마침내 하느님 안에서 깨어날 때 자신의 영원한 참 본성을 기억해 낸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빚어졌기에 잠시 미몽에 빠져 있을 따름이다.  이 잠정적인 미몽 때문에 스스로를 유한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한한 존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한 인간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자기를 유한한 존재로 보는 영혼의 미몽이 수많은 환생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탕자가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고 하느님법의 영감을 받으면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게 되고 하느님 안에 있는 고향집을 기억하며 지혜를 회복한다.  이렇게 깨어나면서 탕자의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의 영원한 형상임을 기억하고 우주의식과 다시 하나가 된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바꿔놓지 못한다.

인간인 우리가 신성한 하늘아버지 말고  어디서 사랑의 본능을 물려받았겠는가? 사람조차도 자기 아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수 없는데 한없이 큰 사랑의 아버지는 어떻게 당신의 자녀를 유황불에 던지신단말인가?   우리가 자신의 악행으로 자신을 벌주고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을 상주는 것이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바꿔놓지 못한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좋지 않은 환경의 정글에서 잠시 길을 잃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죄가 산더미 같아도 그것이 우리의 신성하고 영원한 본성을 바꿔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죄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완전한 영혼을  잠시 덮어 씌운 껍질과 같다. 명상으로 그 껍질이 깨어질 때 우리의 옹근영혼이 마침내 제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구굴의문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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