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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 웨인 다이어 )2

 

 

불가능과 치료불능, 가망 없음이라는 생각을 넘어라!  그것을 모든 것이 가능한 영의 에너지로 대체하라! 요약하면 언제나 긍정적이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라!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라!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 책표지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 웨인 다이어 ) (There is a spiritual solution to every problem 원제목 ) 책은 '영적 해결책'으로, 에너지와 주파수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높은 에너지로 정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당신의 몸은 신에게 이르는 교육 과정이다.

 

 

치유

이번생에 당신의 영적 자아는 지금 상태의 몸을 도구로 받았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라.  몸이라는 도구는 당신이 아니며 당신도 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형상은 우리의 본질이 아니다.  각개인의 능력이 신의 치유력과 온전히 합일할 때 질병이나 부상이나 상처에서 영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당신의 생각 속에서 두려움 의심, 증오, 분리 등의 낮고 느린 진동을 뒤로하고 사랑 친절 용서 연결 감사 무한의식등 빠르고 영적인 주파수에 다가갈 때 당신은  다른 사람과 자신의 건강을 치유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유란 의식의 상태로 신은 당신을 통해 상처와 받는 곳에 닿는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질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신으로부터 분리된 결과이다. 

 

 

 

내가 아는 모든 의사친구들이 인정하는 것이 있다 

신체의 자유치유력이 지닌 불가사의 한 경이로움이다.  그들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치유의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안다.  그것은 순수한 영적인 에너지로 상처를 치유하고 유기체에 완벽한 조화를 유지시킨다.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심으라,라는 성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충족시키기 위해  당신이 사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완벽한 영적에너지다. 상처와 병의 에너지장을 들어갈 때마다  이렇게 말하라 당신은 지금 상처와 질병의 공간으로 찬란한 영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중이다라고 말이다. 

 

 

아픈 자를 돌보되 병에는 무심하라

병자체에 대해 자나치게 걱정하는 등 에너지를 과도하게 기울임으로써 상처를 키우지 말라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치료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 자신과 타인이 왜 아파야 하는 이유를 더 이상 늘어놓지 말라 병이 났을 때에만 사랑의 관심을 주는 일을 피하라. 아픈 것과 사랑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파야 주변의 사랑을 받는다고 잘못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이 그렇다.  병자체에 무심하라 진정한 당신은 아플 수 없다. 병이란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될 때 사라진다.  당신은 어떤 질병보다도 강한 존재입니다.  사랑을 핑계로 상처를 강화하는 일을 그치고 축복을 강화하는 일에 진정한 사랑을 사용할 때 치유는 즉각적으로 일어 난다

 

 

마음은 시각화를 통해서 내면의 이미지를 물질적 현실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농구선수들도 이런 시각화 연습을 통해 자유투 연습을 한다. 그러니 당신이 상처 입은 부위에 치유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나 혼자 있을 때 이 시각화 기법을 늘 연습한다.  심장의 차크라 에너지를 머리의 통증 부위로 보내자  두통이 즉시 사라지는 경험도 있었다. 당신도 신체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조화를 회복하는 능력을 끌어낸다면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다.  언제나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조화로운 신의 세계가 지닌 치유의 힘을 느껴라 꽃들 일몰과 일출 산과 해변 아름다운 영혼의 문학을 마음껏 경험하고 즐겨라 치유가 필요할 때는 자신을 활짝 열고 가능한  영혼을 고양시키는 음악을 들으라 

 

 

당신이 순수한 용서의 도구가 될 때  당신은 지구상에 모든 사람이 치유되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이라는 유일한 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제나 당신의 에고를 내려놓고 신의 은총에 자신을 내 맡기는 과정이다.  그리고 용서라는 형식으로 언제든 이렇게 할 수 있다.  라마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은 반어적 질문을 던지며 말했다. '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신의 에고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내가 한다고 느끼는 한 결코 신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