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신을 발견했다. 나는 신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나 자신을 발견했다.
명상수행은 두 개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단계는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벗어나 순수의식으로서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시 일상적인 삶과 현실적인 경험으로 되돌아가서 순수의식과 실제경험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두가지 접근법을 통합하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는 직접적인 길이다.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 being aware of being aware , 루퍼트 스파이라 ) 그는 17살에 명상을 배웠고, 여러 해 명상의 지도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루퍼트는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여러 나라에서 명상모임과 수련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40년 동안 명상과 기도에서 배운 모든 것을 담은 것이라고 말하며, 명상에 대해 직접적이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매우 깊이 있고 쉬운 말로 평이하게 설명하지만 결코 가볍거나 피상적이지 않으며, 논리적이고 비 이성적이지만 깊은 영적 울림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대부분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고, 명상에 특별한 깨달음이나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온전한 평온함과 진정한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늘 있는데 그것이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신비주의적이고도 종교적인 것들을 싹 거둬내고 핵심적인 논리만을 추출하여 현대적이고도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합니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에 올 때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줄 선물로 가져온 것이 바로 루퍼트 스파이라의 도예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인식을 알아차리는 방법
-인식의 질문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집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을 인식하는 행위로 돌려줍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인식이라는 경험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인식의 초점 자신의 인식을 한 가지 대상에 집중시킵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의 감각이나 귀의 소리 등입니다. 그런 다음, 인식이 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인식은 어떤 모양이나 크기나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인식은 어떤 색깔이나 향기 나 맛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찰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인식이라는 경험의 특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 인식의 전환 자신의 인식을 한 가지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전환시킵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의 감각에서 귀의 소리로, 또는 귀의 소리에서 코의 냄새로 등입니다. 그런 다음, 인식이 어떻게 대상을 바꾸는지, 인식은 어떻게 대상에 적응하는지, 인식은 어떻게 대상에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관찰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인식이라는 경험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알아차림은 특별하고도 오묘한 종류의 경험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알아차림을 스스로 알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수행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 해 주겠다고 하는 신비한 경험을 해주겠다고 하는 명상전문가는 사실 명상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깨달음이 뭔지 잘 모르거나 크게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명상은 뭔가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자아를 제거하거나 없애는 것이 명상의 목표인 것도 아니다. 제거해야 할 개별적 자아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자아를 헤치 하고 완전히 뿌리 뽑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환상적인 존재를 영속시킬 뿐이라는 것이 스파이라의 입장이다. 명상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스파이라는 강조 한다. 명상은 우리의 존재 방식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나는 사실 진짜 내가 아니다. 그것은 진짜 나에 무언가 덧입혀진 것이다. 내 이름은 나에게 부여된 것이지 진짜 나가 아니다. 나의 직업은 나에게 일정기간 동안 부여된 역할이지 나가 아니다. 내가 입은 옷이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짓지도 않는다. 내게 부여된 모든 것 내가 맡은 모든 역할, 내가 갖고 있는 것, 이밖에 나를 한정 짓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이 진짜 나다. 그 진짜 나의 다른 이름이 곧 알아차림이다. 내가 이러저러한 역할을 맡고 있고 이러 절한 것을 갖고 있으며 이러저러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늘 알아차리고 있는 존재가 곧 진짜 나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존재가 곧 진짜 나다. 진짜 나를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알아차리고 있다.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애쓰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그저 고요함 속에 머물면서 알아차림으로써의 나의 본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이다. 내가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본성이 곧 평온이고 행복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대상적 경험으로부터 주 위를 거둬들이고 알아차림을 그저 알아차리게 되면 아무것도 더 원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과 만족감이 차오른다. 내 마음과 몸이 지금 이 순간 제자리를 찾고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작동되기 시작하는듯한 확실하고 강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나간다. 내 몸과 마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완벽한 행복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 것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내 것이 곧 나라고 착각한다. 내 생각도 나의 감정도 내 것일 뿐 내가 아니다 내 생각과 감정은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일 뿐 내가 아니다. 내가 알아차릴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내 경험과 인식의 대상일 뿐 , 즉 내가 지닌 어떤 것일 뿐 나 자신이 아니다. 일상적인 관념에서 나의 일부라고 믿었던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라고 할 만한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인식의 주체다 경험의 주체다. 따라서 나에 대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실체라 할 것도 없다 , 인식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항상 존재합니다. 행복은 불행과 더불어 번갈아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파란 하늘이 서로 반대가 아니듯이 행복과 불행이 서로 반대는 아닙니다. 구름이 파란 하늘을 잠시 가리고 있듯이 불행은 행복을 잠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우리의 본성이며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마음의 원천에 우리 자신의 핵심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드러날 수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