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을 저지하거나 늦추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의 사명과 신념이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합니다.
의사를 반성한다 ( 나카무라 진이치 中村仁一) 저자는 일본의 의사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교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형 병원의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지만, 60세를 넘기며 고위직을 사임하고 노인요양원인 도와엔(同和園)에서 일반 의사로서의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저서 『의사를 반성한다』는 의료 현장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책은 죽음의 진정한 의미와 오늘을 사는 방식을 다루며, 일본에서 5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입니다.
어느 노인 요양원 의사의 양심고백
사람들은 원래 죽음이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병원이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심지어 암에 걸린 사람마저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고통 없이 평온하게 죽어 갑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죽기에는 암이 최고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암으로 인한 고령층의 자연사를 100건 이상 경험한 지금은 그 신념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평균수명을 다한 노인들에게 암으로 인한 사망이 최고라고 권합니다. 단 여기에는 암검진이나 정밀검사 따위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특별한 증후가 없다가 80에서 90세에 이르러서야 암이 발견되는 경우는 편안한 죽음을 위한 때를 놓친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년기를 편안하게 보내려면 약물과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노화에 순응하며 질병과 동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노인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마지막 역할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죽는 방식이란 사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입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내가 사는 방식, 이웃이나 가족과 관계를 맺는 방식, 이 모든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장면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의료 행위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회복할 가망성이 있다거나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다. 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에서 위에 구멍을 뚫어 영양을 공급한들 과연 건강을 회복하거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까요, 오랫동안 노인 요양원에서 경험한 바로는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지상에서의 시간을 모두 마치고 이제 정해진 때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순간이 오면 몸이 먼저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되면 몸은 활동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영원한 휴식을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을 하나둘씩 꺼나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영양분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배에 구멍을 뚫고 튜브를 넣어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과 비참함을 강요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간혹 수액주사 덕분에 한 달을 더 사셨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 달 동안 스포츠 음료보다 연한 미네랄 음료로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마치 물만 드릴 테니 힘드시지만 살아 계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이지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사회 통엽으로는 그것이 사랑이며 효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너무도 무지하고 이기적인 행위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장자의 "인생여 백구화급 ( 人生如白駒過隙 )" :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