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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영적자각을 논의하고 교환하는 일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일치 현상을 인지하는 것은 자신에 종교전통을 드높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일치현상의 입지는 우리 삶에 적용하는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증명해 준다. 우리의 자각과 신념을  항상 말해준 신의 힘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제임스 레드필드가 지은 [[기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세 번째 저서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살아가는 독특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인간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난 의식이 잠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에이지의 물결과 우연의 일치로 다가오는 기적들, 인간의 의지에 응답하는 우주 등 신비한 현상과 일치 현상이 이끄는 삶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윤회의 관점으로 살아가기, 인간의 운명을 마음속에 떠올리기 등 , 책은 영적인 자각의 정도를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며, 역사적 과학적인 광범위한 배경 지식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사건이 어떤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고, 이 신비로운 현상이 우리를 자신만의 운명을 따르도록 만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기적적인 일들과 과학의 발견은 더 나은 세계로 진화하기 위한 끊어지지 않는 고리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성한 현존과 연결되어 영적인 통합을 이루고, 우리의 의식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한 마지막 확장의 시발점에 도달했다고 말합니다. 황홀경이라는 육신의 변화를 경험하고, 우주의 본성과 우리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온 세상에서 이것을 감지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최종적인 결론이 전부 연결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주 강렬하고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영적인 성장과 인류의 진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일 것입니다.

 

--에브라함 링컨은 젊은 시절에 일어난 우연의 일치에 관해서 글을 썼다. 그 시절의 링컨은 일리노이주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농부나 수공업작가 아니라 뭔가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가난한 행상인 한 사람을 만났다. 행상인은 링컨에게 구재품한통을 1달러에 사라고 애원했고 링컨은 그의 부탁을 굳이 뿌리 치지 않고 그 물건을 샀다. 통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오래된 통조림과 가정용품이 뒤죽박죽으로 들어있었고 바닥에는 법률책 한 질이 들어있었다. 

링컨은 그 책으로 법률공부를 시작하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융은 이 신비한 현상을 규명한 최초의 근대 사상가였다. 그는 이 현상을 일치현상, 동시성이라고 불렀고 그 안에 우연의 일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융은 일치현상이 우주의 인과적 원리이고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한낱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기이하고 의미 깊은 사건의 공교로운 일치를 말한다.  칼융은 그 의미를 인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미에 의해서 연결된 두 가지 사건의 동시발생이라고 정의했다.--

 

--내 생각에 각각의 신앙은 나름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다. 여러 종교 간의 갈등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전체적인 영적 지혜를 높이는 우리의 진화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판적이다.  일치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지는 한 종교의 전통이 다른 것보다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다른 영적자각이 그렇듯이 우연의 일치는 우리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에 불과하다, 힌두교 불교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는 무속신앙까지 어떤 종교든 신의 의지에 대한 답변이 되는 개념을  나눈다.   어떤 종교든지  그것은 신앞에선 단독체로서 또는 인간 상태를 넘어서 창조적인 힘을 얻게 되는 우리의 성장과 관련되어 있다.  일치현상에 대한 우리의 자각은 신의힘과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

 

-- 한 사람이 찾아낸 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은 따라야 한다는 무언의 가정은 어디에서든지 적용되었다. 어린 나는 신의 의지를 찾고 따르는 자세히 방법을 논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물론 이 시기는 사회가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적 물결에 심각하게 휩쓸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의문에 휩싸였다.  우리가 마음을 나눠야만 하는 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신을 경험하는가, 신의 뜻대로 정렬해 있는 느낌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 어른들은 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어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이 질문 이상의 것들에 답하는 일이 우리의 새로운 영적 자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