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문제는 마음과 지능이라는 중간차원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데 있다. 거기서 걱정, 불행, 고통과 덧없음이 나온다. 지능은 모든 것을 문제로 만드는 데는 선수이지만 해법을 찾는 데는 전적으로 무지하다. 본능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해법도 필요 없다. 본능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따름이다. 직관은 그 자체가 순수해법이다.
느껴라,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 오쇼 라즈니쉬 )이 책은 용기, 창조, 직관, 각성, 성숙, 친밀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로 이루어진 6권의 책으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오쇼의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직관 - 느껴라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에서는 존재계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가슴에 직관을 남겼다고 합니다. 가슴의 직관에서 예술이 나오고, 사랑이 나오고, 아름다움이 나옵니다. 저자는 바로 이 직관을 키움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직관, 지능, 본능
마음과 지능의 세계 너머에 직관의 세계가 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직관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 명상은 직관의 세계를 두드리는 노크이다. 직관은 언제나 완전히 준비되어 있다. 직관은 인간이 존재계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직관은 인간의 의식이요 존재이다. 지능은 인간의 마음이다. 본능은 인간의 몸이다. 본능이 몸을 위해 완벽하게 기능하는 것처럼 직관은 인간의 의식을 위해 완벽하게 기능한다. 지능은 본능과 직관 사이에 있다. 본능과 직관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요 통로이다. 세상에는 이 다리를 건너보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 지능은 본능에서 직관의 세계로 나아갈 때 사용하는 작은 도구일 뿐이다. 지능을 사용해 본능과 지능의 세계를 넘어가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간의 과학은 지능의 세계에서 멈추었다. 그래서 과학은 의식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의식과 무의식
삶과 진리 존재 그리고 자신을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본능과 지능을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면서 어떻게 자신을 알겠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무의식이라는 지하창고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도록 자신을 억압한다. 세상에서 종교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모두 두려움에 떨면서 산다. 이 두려움은 무의식과 억압된 본능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본능은 끊임없이 의식의 문을 두드린다. '열라 나도 들어가고 싶다, 나도 내 바람과 꿈을 실현하고 싶다. 본능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위험해진다. 무의식과는 친하게 지내라. 생리적인 현상은 마음껏 누려라, 그러면 의식과 무의식이 싸우는 일이 사라진다. 이점을 깊이 들여다 보라, 그래야 정신이 온전해진다. 그러면 본능을 억압할 때 쓰였던 지능이 크게 발전한다.
사람은 지금 여기서 천국을 누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 본능과 무의식이 충족되면 생리현상은 가라앉고 본능으로 소비되던 모든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럼 에너지는 스스로 상승하여 초의식의 중심에 멈춘다. 거기에서 직관이 그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