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은 우리를 잘 바꿀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을 개선하려는 작업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 바꾸려는 작은 노력들이 모이면 나중에 때가 됐을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되어 다음생으로 전해 집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다 ( 최준식 ) 최준식 교수는 종교학자이자 문화재 연구가로,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죽음학회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죽음, 또 하나의 세계』, 『종교를 넘어선 종교』,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습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들이 카르마 법칙의 관점에서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표현은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최준식 교수는 이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리가 태어날 때 많은 카르마를 가지고 오며, 세상을 떠날 때도 많은 카르마를 가지고 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라 "만수래 만수거"라고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카르마 법칙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파헤치며, 독자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카르마법칙
카르마 법칙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뿌린 데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즉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했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일을 했으면 나쁜 과보를 받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카르마 법칙은 지금 살고 있는 현생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생과 다음생을 모두 인정합니다. 이것을 삼생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카르마 법칙에 따르면 사람은 죽었다 태어났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환생합니다. 이 전체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을 통제하는 게 바로 카르마 법칙입니다. 이것은 카르마 법칙을 아주 간단하게 본 것인데 이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평상시에 갖고 있었던 세계관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카르마 법칙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결코 빈 몸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나'라는 개체가 생긴 이래 내가 체험한 모든 일이 저장돼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엄청난 정보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확하게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는 그 시초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나라는 개체가 생긴 이래로 경험한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번생에 발현되는 카르마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영혼들의 세계에 있을 때 이번생 카르마를 미리 정하고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혼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카르마 가운데 이번생에 지상에 태어나면 어떤 업보를 해결할지를 결정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카르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번생에 필요한 배경을 세팅한다고 했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번생에 과제로 하는 카르마를 소멸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가족 내에 태어나는가를 비롯해 살면서 어떤 사건을 겪고 직업은 어떤 것을 택할지 , 결혼생활은 어떻게 할지 등등 모든 사회적 관계를 미리 정하고 온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번생에 겪는 수많은 일이 우연으로 생긴 것처럼 생각하지만 카르마 법칙은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큰 사건들은 모두 계획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부모나 동기, 배우자, 자식등은 모두 정해져서 오는 것이고 자신의 생을 바꿀만한 사건들, 예를 들어 큰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다거나 , 큰돈을 번다든가 하는 것들도 모두 정한 다음에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 당연히 몸은 알몸으로 오지만 영혼에는 엄청난 양의 카르마가 실려 태어나는 것입니다.
카르마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탄생은 카르마의 복합적 군단이 지상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무당 같은 점술사들이 인간의 과거나 미래를 알아내는 일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점으로 사람이 과거에 겪은 일이나 앞으로 겪을 일을 알아맞히는 것은 신기하게 보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직접 알아내는 게 아니고 그들이 모신다고 하는 영적인 존재들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존재들은 상대방의 카르마를 읽을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어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에 저장돼 있는 카르마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마음이 더러워져 그 일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참선 같은 것을 많이 하면 그 능력이 되살아난다고 하죠.
우리는 이번생을 마칠 때 절대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물리적인 손에는 아무것도 없겠지요.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동전하나 가져가지 못하며 아무리 땅을 많이 가진 부자도 땅한평 가져가지 못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카르마식 관점에서 보면 태어났을 때보다 더 많은 카르마를 갖고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가 한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합니까? 우리는 이 경험과 생각들을 모두 저장해서 영혼들의 세계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