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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의식의 본질 ( 나의 눈 , 데이비드 호킨스 )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여는 법

 

 

나의눈 . 책표지

 

나의 눈 (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저자는 교육과 과학, 의학, 정신의학, 정신 분석학 그리고 임상적이고 과학적인  저술과 연구등의 분야에서 폭넓은 체험을 쌓았고  재능을 발휘하여  성공적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이를 즈음은 그는 뉴욕에서 가장 큰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영적인 체험과 사춘기 때 다시 그런 체험을 했으며 중년기 때 완전히 터져 나왔습니다.  중년기 때 체험으로 그는 여러 해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면서 의식의 본질에 대한 최종적인 연구에 몰입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의식혁명'과 이 책입니다. 

 

 

참 존재

숨죽인 침묵이 주위에 충만하고 동작은 느려지고 고요해진다. 모든 것은 생생한 빛을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그 환한빛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신적인 속성으로 넘친다.  그 빛은 절대적인 하나 속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포괄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앎이란 수단의  그리고 존재의 본질이 가진 기본적인  속성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연관되고 교류하며 조화를 이룬다.  참 존재는 과거의 통상적인  지각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인식했던 것을  완벽하게 채우고 있는 연속체다  그 내적인 앎은 참나와 다르지 않다. 앎의 모든 것의 본질에 두루 깃들여 있다. 앎은 자신의 자각상태와 자신의 모든 것에 두루 존재함을  스스로 알고 있다.  실제와 실제가 형상 및 형상 없는 상태로 그대로 표현된 것은 그대로 신이며  모든 대상 사람 식물 동물 속에 골고루 퍼져 있다 모든 것은 존재의 신성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이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참으로 가치 있는 유일한 것은 존재의 신성뿐이므로 모든 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참나는 전제적이고 완전하며 모든 곳에 평등하게 존재한다.  거기에는 욕구도 바람도 결핍도 없다.  불완전함과 불일치도 없으며 모든 사물은 조화로운 그림이나 조각처럼 나타나며  완벽하게 아름답다. 

 

 

우리의 몸의 정의 

몸은 가구나 그밖에 사물이 그러하듯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몸의 개인적인 요소는 전혀 없으며 그와 결부된 고유의 개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몸은 저절로 작동하면서 신체적인 기능을 정확하게 수행하며 힘들이지 않고도 숨 쉬고 걷는다.  몸은 자체의 동력에 따라 움직이며 그 활동은 참 존재에 의해 결정되고 실행된다.  몸은 그저 방안에 있는 다른 것과 동등한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자기의식이 신성의 체험임을 알고 내밀한 기쁨에 젖어 있다.  모든 사물은 하나같이  자기가 신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받은 것에 조용히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예배나 경배는 바로 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창조되고 존재를 부여받은 모든 것은 하나같이 신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에는 완전히 새로운 오로라가 깃들여 있다.

유일한 참나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통해 빛을 바란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한 빛이 감돌고 있으며 모두가 다 평등하게 아름답다.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다른 레벨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간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이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원래부터 사랑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모든 대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될 수 있게끔 변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레벨의 의식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창조

우린 좋다거나 나쁘다는 용어들조차도 인간의 욕망에서 유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면 좋은 것이 되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나쁜 것이 된다. 관찰행위에서 인간적인 판단이 제거될 경우 끊임없는 진화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형상들만 보일 것이다.  본원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도 아닌, 모든 것은 본질과 그것을 지배하는 여러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본래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찬연한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신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과정에 이름이 바로 창조다. 

 

 

실제의 세계는 시공간과 형상 너머에 있으며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이 짧은 한순간만 존재하는지 천년동안 존재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몇 년 아니 불과 며칠을 더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존재가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 아니므로  한낱 공허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진실이다.  다른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추상적인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