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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에고와 동일시에서 벗어나기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크하르트 톨레 ) 2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삶을 괴롭혀온 불행을 끝내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주어진 순간에도 자신의 내면 상태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책표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에크하르트 톨레 Eckhart Tolle) 저자는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화와 현재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특정 종교나 전통에 매여 있지 않은 저자는 마치 차분한 해설자처럼 인간의 굴레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각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책 두 번째 리뷰입니다

 

 

 고통체의 힘을 더해 주지 않기

고통체가 일어날 때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때마다  고통체의 부정적인 감정에너지 일부는 늘 그랬듯이 불태워져 현존의 에너지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고통체의 나머지는 서둘러 철수해 다시 일어날 더 좋은 기회를 즉 당신의 의식이 덜 깨어 있는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고통체가 일어날 더 좋은 기회는 아마도 당신이 술 몇 잔을 마시거나,  폭력적인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처럼 당신이 현존을 잃어버릴 때 일 것이다. 짜증과 걱정 같은 사소한 부정적인 감정도 고통체가 되어 되돌아올 수 있는 현관문이 될 것이다.  고통체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무의식이다.  그것은 현존의 빛을 견디지 못한다.  

 

 

현재에 순간에 대해 고통체는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장애물로 반응하는 것 , 적으로 반응하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고통체에게 현재의 순간이 기껏해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만 쓸모가 있습니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미래나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지금 이 순간이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고통체가 아니면 과거가 괴롭힐 수도 없습니다.  고통체가 과거를 끄집어내면 지금 이 순간이 고달파지고  고통체가 미래의 어느 순간에 데려가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이 불안하고 두려워지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을 다시 경험하거나 미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의 순간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집니다. 지금 살아가는 삶이 문제가 되어 버리지요.  어차피 문제는 해결해도 다른 문제로 또 튀어나옵니다. 현재가 삶을 장애물로 보면 문제는 끝은 없습니다

 

 

 

고통체가 작동하여 현재의 삶을 문제로 인식하고, 장애물로 인식하면 삶도 그렇게 반응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데로 나는 무엇이든 되어 줄 거야, 당신이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나는 당신을 대할 거야, 당신이 나를 문제라고 보면 나는 당신에게 문제가 되어 줄 거야  장애물이 라고 생각하면 장애물이 되어 줄 거야'  외부적인 현실은 늘 우리의 내면 상태의  반영이기 때문에 고통체가 상황을 적으로 만들면 적대적인 삶과 세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체와의 동일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는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다. 그것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고통체가 활성화될 때 자신이 느끼는 것이 자신 안의 고통체임을 아는 것, 이 앎이 그것과의 동일시를 멈추는데 필요한 전부다 그리고 그것과의 동일시가 멈출 때 전환이 일어난다.  그 앎은 과거의 감정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 마음속의 대화를 차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자신의 행동까지도 점령하는 것을 막아 준다 이것은 고통체가 더 이상 당신을 사용할 수 없고 당신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감정을 현재상황들에 투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안에서 직접 마주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현존은 그것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 그 감정은 당신의 존재가 아니다.   당신의 고통체를 느낄 때 자신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만드는 것, 에고는 그것을 좋아한다.  앎은 받아들임이 뒤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앎은 또다시 흐미해질 것이다.  에고는 자신을 하나의 조각으로 착각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이 아니다.  당신이 진정한 본질이 나타나면 그것은 신의 본질과 같다. 당신은 온전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온전한 자신이어야만 한다.  고통체와 함께 있든 함께 있지 않든.  

 

 

우리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식의 차원을 이 세상으로 가져오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