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현실 속에 있든 현실을 떠나든 마음의 평화를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류시화 ) 저자는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80여 권을 번역한 번역가이자 시인입니다. 이 책은 삶의 내면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 명상서적으로, 삶이라는 명제를 형식에 매이지 않고 내적인 체험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우화로 엮으면서 류시화 특유의 바람결 같은 문체로 이끌어갑니다. 시간의 흐름, 자연 현상, 어린 시절의 경험, 아버지에 대한 회상, 인도에서의 스승과의 만남, 여행과 만남, 헤어짐 등 삶을 찾아 헤매는 여행길의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책은 깊은 삶을 찾아가는 길목의 작은 등불처럼, 현대인들의 삶과 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깨우침을 찾아 함께 길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어느 겨울날 목사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젊은 목사는 아버지에게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신 뜻과 독생자 예수의 구원의 원리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아버지는 그냥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치 물결에 일렁이는 낚시찌바늘을 바라보듯이 아버지의 그 무관심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기까지 한 그 시선을 당해낼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강에서의 낚시를 통해 감정 없이 바라보는 것을 완전히 터득했던 것이다. 목사는 제풀에 꺾여 차츰 말꼬리가 흐려지면서 자꾸만 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 자네는 어떤 인생을 살았나?" 목사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버지가 목사를 감히 '자네'라고 불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도를 하면 대부분이 교리 자체에 대해 반론을 펼 뿐인데 갑자기 목사 자신의 인생 경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당황했던 것이다 목사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이제 막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에게 아버지가 한 말은 이것 한마디였다. "그만 돌아가게"
솔직히 말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 자식들은 별로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만큼 인간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우리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 누런색으로 변한 아버지의 흑백 사진들을 불길 속에 한 장 한 장 던지는 동안 잘 타지 않는 매운 연기가 나에게 뜨거운 눈물을 쏟게 했다. 그것이 나로서는 아버지의 지구별 여행을 마감하는 49제 같은 것이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랍비 하임은 아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너의 아버지가 지혜로운 자였고 성스러운 자였으며 선한 자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무엇보다도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
나는 만나는 모두에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물었다.
길가에 꽃에게 새들에게
큰 언덕에게 아이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피부색 다른 남자와 여자들에게
나는 물었다.
이 삶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 위에서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