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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

오늘 소개드릴 화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입니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학가이며 사회운동가였습니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어요. 수원 출신인 그녀는 일본 유학 중 만난 최승구라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분위기상 여자에게는 재산상속권이 없었는데 이를 부당하다 여기고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하기도 했죠..

여러명이 서있는 사람 그림
나혜석의 그림

 

이러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나혜석은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인 나혜석은 왜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라는 글을 썼는데,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상황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나혜석은 제국주의 사상 아래 식민지 국민들을 억압하던 친일파 세력들이 미개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 바로 위의 글입니다. 실제로 저 글에서는 '조선남자'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민족반역자들인 친일파세력을 지칭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  사실 나혜석은 처음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신여성으로서 공부에만 매진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권유로 도쿄유학을 가게 되고 거기서 최승구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죠. 하지만 최승구는 이미 아내가 있었고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이때 나혜석은 다시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운명처럼 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신문기사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나혜석의 스캔들 소식을 듣고 분노한 최승구의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된 거죠.

그때 나혜석은 세상 모든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당연한 권리임을 주장하며 공개재판을 요청했고, 당당하게 자신의 연애관을 밝히며 정조관념 없음을 인정받아 무죄판결을 받아내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같은 해 5월부터는 천도교 교령으로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기도 했다. 

 

 그런 굴곡진 삶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며 열정적으로 살았던 모습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여성의 그림
나헤석의 그림
나혜석의 풍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