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 안에서 생각보다 더 깊은 차원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있다. 무엇을 믿고 어느 신을 따르는가가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영성은 우리의 내면이 어느 차원에 이르렀는가와 관계가 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에크하르트 톨레 Eckhart Tolle)는 1948년 독일에서 태어난 영성 지도자이자 자기 계발 작가입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와 “새로운 세상: 당신의 인생의 목적을 일깨워라” 등의 저서로 유명합니다 톨레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다가 깊은 내적 변화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에고와 생각을 초월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그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그는 사춘기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살충동을 느껴온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절망감과 삶의 무의미함에 시달리던 그는 29살 생일이 지난 어느 날밤 깊은 회의를 느끼고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더 이상 나 자신과 함께 살 수 없어 , 그럼 나라는 존재가 둘이란 말인가? ' 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고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이겠군' 하고 생각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그는 의식이 중지된 상태로 빠져 들었다. 또 다른 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가짜 나를 버리는 순간 그는 생애 최초로 주위의 모든 것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비한 그 자체임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와 만나는 것이 삶의 목적에서 깨어나는 일이다. 실체가 아니면서 지속적인 실체인 듯 우리를 지배하는 에고, 그 거짓 자아를 인식하고 그것에 가려져 있던 순수 존재를 회복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고통체의 연금술
고통체로부터의 자유는 무엇보다 자신이 고통체를 지니고 있다는 앎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과 깨어 있음 속에서 자신 안에 고통체가 활동할 때 부정적인 감정이 무겁게 밀려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일단 당신이 고통의 존재를 인식하면 그것은 더 이상 당신자신인채 가장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을 통해서 살 수 없고 자신을 매번 새롭게 등장시킬 수 없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일이야 말로 고통체와의 동일시를 끊는 일이다. 당신이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으면 고통체는 더 이상 당신 생각을 조정할 수 없으며 그 생각을 먹이 삼아 더 이상 자신을 새롭게 할 수도 없다. 대개의 경우 고통체는 금방 해체되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일단 그것과 자신의 생각사이의 연결을 끊어 버리면 고통체는 에너지를 잃기 시작한다. 그때 당신의 생각은 감정으로 가려지던 상태에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당신의 현실이 더 이상 과거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다. 이때 고통체에 갇혀 있던 에너지의 진동 주파수가 바뀌어 현존 에너지로 전환된다.
주위에 공간이 있음을 깨달은 그녀
그 공간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마음속에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 경험들과 함께 있게 했을 뿐이다. 나중에 그녀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에게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통스러운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것을 중단한 순간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려고 애쓰는 대신 직접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그녀의 감정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불행한 나라고 마음속에서 만들어 갖고 있던 이야기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감정 그 자체는 불행이 아니다. 감정에 불행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불행이다.
고통체체의 기본적인 작동방식
고통체체와 바라보는 자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체체는 사람, 사물, 감정등 모든 것에 동일화를 시켜 본인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고통체는 나를 만들고 나의 것도 만듭니다. 생각하는 나 가 고통체라고 했죠? 생각하는 나가 가진 나의 집, 나의 자동차 그 외의 나의 무수한 어떤 것들이 있다. 이것들이 동일화의 증거입니다. 고통체는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듭니다. 바라보는 자는 바라보기만 하지 소유를 하지 않습니다. 고통체가 소유를 하고 싶어 하는데 이것이 작동방식입니다. 나의 것을 늘려 가며 동일화를 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