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춤, 고독, 죽음, 몸, 결혼, 출산, 사랑, 종교 등 삶의 조건들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를 말해주는 이 책 속에서는 그녀의 치열했던 체험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책은 개인적 체험의 기록이지만 여기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자유의 메시지가 있다.
자유를 위한 변명 ( 홍신자 ) 세계적인 전위 무용가 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듯 살아온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다.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한 홍신자의 성장 과정, 돌연 무용을 포기하고 이로 떠나 매진한 명상과 구도, 무용가이자 명상가로서 인간의 몸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훈련,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생긴 자유에 대한 통찰 등이 저자가 활동한 시대에는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담겨 있습니다
종교에 대하여
나는 뜨거운 봄베이의 옷장만한 그의( 마하라지 ) 다락방에서 매일 같이 그를 뵈었다. 그가 나의 등을 떠밀어 세상으로 보내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우리의 질문과 대답은 맹렬하기만 했다. 어느 날 배꼽을 놓고 허탈한 웃음을 계속 짓는 나를 향하여 그는 말했다. 넌 이제 떠나기 바란다. 거리에 춤추는 거지가 되든 , 이름 없는 동네의 아낙이 되든 , 무엇을 택해도 좋다. 너는 이미 삶은 환영일 뿐이라는 진리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가라! 가서 갠지스 강가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든 , 도시에 인기 높은 광대가 되든, 결국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네가 원하는 바에 따르라! 아무 두려움을 가질 것 없다.
원래부터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성경에 진리가 있고 , 불경에 진리가 있다면 그 모두는 하나 일수 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방법과 의식을 달리하고 있을 뿐 그 원천으로 들어가면 결국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생기기 전부터 인류는 존재했다. 경전이 생기기 전부터 진리는 있어 왔다. 내가 종교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이것을 택하면 저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속박 때문이기도 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일관된 주장은 종교도 구루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 해답을 이미 갖고 있으니 스스로 그 해답을 찾으라고 말했다. 해답은 남에게서 결코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이종교 저 종교를 혹은 이 스승, 저 스승을 추종하는 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고 오직 자신의 지성으로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했다.
신은 결코 천상의 옥좌에서 임할 수 있는 어떤 형상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모셔 예배드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오감으로는 신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오감에 뿌리를 둔 인간의 언어 역시 그것을 묘사하지 못한다. 다만 오감을 떠난 상태의 순수한 의식이 그것을 특별한 방법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신은 내 안에 있다. 신은 존재계전체인 것이다. 신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춤을 출 때, 깊은 명상의 순간에 또는 거친 대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그것을 느낀다. 내가 말하는 신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은 곧 무아의 상태, 큰 희열의 상태, 대 자유의 상태, 사마디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