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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내 존재 자체가 나를 부양한다 (우리는 신이다, 페테르 에르베 Peter O. Erbe)

 

내 존재 자체가 나를 부양한다. 진짜 안전이란 이런 것이다.  여기에는 마음의 평화가 있다.  이런 이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주어진다. 어떤 일거리가 그를 몹시 열광시킬 때 그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순간들 하나하나를 듬뿍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다. 책 표지

 

우리는 신이다 (  페테르 에르베 Peter O. Erbe)  제목은 신성모독자가 지껄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늘 위 어딘가에 존재하면서 인간행동의 잘잘못을 평가하여 벌을 주거나 상을 주는 심판자로서의 신"과는 전혀 다릅니다.  신은 절대 존재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의 표현이자 신의 일부이며, 인간 역시 신의 일부로서 신성의 표현이므로 나 혹은 우리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책은 신성한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과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내 존재가 나를 부양한다

강에서 물한 통을 퍼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강이 그 물의 출처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강이란 차라리 공급물이 흐르는 통로가 아닐까? 이 경우 진짜 출처는 전지 전능한 바다다.  이런 비유가 뜻하는 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직업이나 사업 따위는 결코 내 공급물의 출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는 내 존재 자체이다. 직업이나 내 공급물이 흐르는 수단, 통로일 뿐이다.  누군가 그런 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내 존재가 나를 부양한다는 간단한 문장으로 응축되어 표현된다. 내 존재 자체가 나를 부양한다는 이 강력한 진술의 비밀은 우리 힘의 근원을 되찾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힘의 근원을 외부의 것들에게 넘겨주곤 했다. 

 

외부에서 권능을 거두어 자신의 결정체나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나에게 주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버지의 것은 당연히 그의 것이기도 하다. 내 존재가 나를 부양한다는 진술은   외부 조건을 바꾸거나 인간의 상황을 조작하지 않고  단지 조건과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의 출처에 대한 인식만을 바꾼다.  이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 신인 자신의 참나를 믿는 사람이다.  그는 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그의 참나는 개성자아가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필요를 알고 있다.  나무가 땀 흘리지 않고 땅 양분을 끌어올리듯 그 역시 그렇게 한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고정된 인식이 지배하는 특별한 홈이 있다.  이 홈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창조자가  자신의 창조물을 자신에게서 빼앗을 수 있겠는가.  신의 존재 자체가 무한하고  어떻게 신이 제한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모든 공급과 풍요의 근원으로서 우리 속에 창조주 정신을 부정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소유물의 부족이다.  이것은 참나와의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완성을 물질과 이미지들을 보내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관점으로 바꾸려는 거짓 자기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물질을 필요로 하는 건 참된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허약함을 물질의 부로 보상하려는 것이다. 

 

 자기 연을 만든 소년은 운이 나쁘게 남풍에 연을 멀리 날려 보내더라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지만 누가 만들어준 연을 받은 친구는 상실감에 슬퍼한다. 그에게는 연을 다시 만들 능력이 없다.  앞에 소년은 주인이지만 뒤의 소년은 노예다.  에너지와 주위의 일부만을 육신에 소비하면서 자신의 영적 근원에서 안식처를 구할 때 우리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면 불가사의라고 규정했을 우주의 법칙에 따라 물질대상들이  자신들을 부유하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삶의 어떤 경우에나 해당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직장생활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은 내면을 향하지 않고 바깥에 주위를 집중하기 때문에 지겹게 살거나 느끼게 된다.  소유물의 본성이 소유자를 소유하는 데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자신의 물질과 사람과 교리와 개념과 힘의 노예로 만든다.  자신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현명하고  자신을 창조주, 나인 참나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니 그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