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감정들과 현상들을 부정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니, 지축이 흔들리고 혼돈이 찾아온다. 그래서 지옥이 된다. 그럴 때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구나' , '나만 유별난 게 아니었구나' , '이런 감정을 가져도 이런 생각을 해도 괜찮은 거구나', '내가 비정상이 아니구나', 그걸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면 자기 상태에 대한 이물감과 혼돈이 현저하게 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은 내 고통의 보편성에 대한 자각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치유적 효과를 발휘한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 이명수 ) 저자인 이명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재난 현장에서 치유 활동을 펼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집단의 심리적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해결하려 노력해 온 심리 전문가입니다. 책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심리적 치유를 위해 시와 감성적인 메시지를 활용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심리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실천적 조언을 제시합니다.
감정토로는 고름을 빼내는 과정
내 마음이 지옥일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는 고름과 같다. 감정 토로는 고름을 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토로만 해도 감정의 압이 떨어진다. 고름이 오래된다고 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을 빼 내야 정상적인 세포가 복원되기 시작한다. 징징거림은 남들에게는 엄살이지만 내게는 압력에 꽉 찬 압력 밥솥에 압력추를 젖히는 일이다. 그래야 밥도 제대로 되고 폭발하지도 않는다. 남의 징징거림을 견디는 일은 솔직히 피곤하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의 감정의 압력을 빼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견딜만하다. 심한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의 신음 같은 거라 생각하면 찬 물수건을 대주고 싶어 질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징징거릴 때 누군가도 나를 타박하지 않고 받아 준다. 윈윈의 법칙이란 그런 것이다. 징징거릴 수 있으면 결정적 지옥은 늘 대기 상태로만 있다.
나는 본래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
살다 보면 어깨 위에 산 전체를 걸머지는 고통과 벼락처럼 마주 할 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 믿었던 관계가 깨지고, 곤두박질하듯 무일푼신세가 된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힘에 겨워 무릎이 꺾여 넘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다. 일어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나고 ,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살고 싶어서다. 트라우마 현장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치유자 정혜신의 처방은 간명하다. 걱정할 것 없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 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깁스도 없이 정신력만 앞세우고 걷겠다고 일어서면 근육과 신경 혈관이 다 파열돼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 뼈가 붙으면 그때부터 일어서서 걷는 연습을 시작하면 된다. 모든 인간의 어린 시절 나는 온전한 나. 치유적으로 건강한 나의 원형이다. 나는 본래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랑받아 마땅한, 혹은 사랑받았던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였다. 그런 확인은 어마어마한 안정감을 준다. 그 안정감으로 어떤 상처도 견딜 수 있다.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은 외부에서 다른 힘을 빌려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온전하게 사랑받았던 나의 원형을 훼손하는 여러 방해물들을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저절로 된다. 본래 나는 내 두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지옥을 빠져나간다.
상상 속에서는 어떤 증오도 무죄다.
증오는 순식간에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감정인 동시에 가장 처리하기 까다로운 감정이다. 이럴 때 지옥을 탈출하는 핵심은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무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행동으로 옳기지 않는 모든 생각은 무죄다. '그 지랄 맞은 부장이 암에 걸려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잘 드는 칼이 있다면 내 몸을 더듬던 그 손을 싹둑 썰어 버리고 싶어', 그러다가 화들짝 놀랄 필요 없다. 단지 어떤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를 힐책하거나 이중적이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태산 같은 고통 앞에선 누구나 당황스럽고 무기력하고 혼란스럽다. 분노를 조절할 수 없고 ,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내가 미쳐가는 것 같은 감정은 정상이다. 지극히 비 정상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그에 대한 비정상적인 리액션은 정상이라는 의미다. 그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은 죽이겠다는 마음의 표출이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지금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거다. 죽을 만큼 내가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그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음은 거기서 끝난다. 증오의 마음을 마음껏 토로하고 공감받으면 증오 생각은 눈 녹듯 사라진다. 증오를 말해도 된다. 증오도 슬픔이나 불안처럼 말해도 되는 감정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감정이다.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용할 수 있다면 유능하고 용감한 인간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이런 증오의 감정을 섬세하게 들어주는 일이다. 누가 이런 증오의 말을 토로할 때 그걸 잘 들어주는 이가 확실한 용자인 동시에 복 받는다, 보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