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티베트 고승의 환생자로서 영혼이주 ( 롭상 람파의 가르침 )

롭상 람파는 #티베트 고승의 환생자로서 영혼이주를 통해 서양인과 몸을 바꾼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롭상람파의 가르침 책표지

인간의 두뇌는 초자아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는 일종의 수신소인 동시에 새로 배운 교훈이나 경험등의 메시지를 초자아에게 보내는 송신소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들은 보이지 않는, 은빛 줄을 통해 전달된다 이 은줄은 인간의 육체와 초자아를 연결하고 있다.

초자아는 직접 지상으로 내려올 수가 없어서 대신 육체를 지상에 내려 보내는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위로 전달돼 초자아의 기억 속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영감이 뛰어난 사람들은 은줄을 통해 초자아로부터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받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초자아와 끊임없이 접촉했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천재 소리를 들었다, 

위대한 미술가나 음악가들은 그들의 초자아와 접촉을 유지한 사람들이다.

은줄은 초자아가 지상의 육체와 교신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선한 행위는 우리의 세속적인 진동수와 영적인 진동수를 동시에 높인다. 그러나 남에게 악한 행위를 할 때는 진동수가 낮아지고 줄어드는데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진화의 사다리에서 한 계단 아래로 내려놓는 일이다.

당신은 우리가 왜 꿈을 꾸는지 아는가?

우리의 꿈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실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꿈이라고만 부른다.

두 손으로 붙들 수 없고 쪼개서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은 그 무엇이든 믿지 말라는 것이 서양의 교육이다.

꿈이란 유체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경험이 왜곡된 것이다.  잠이 들 때 우리의 유체는 점차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유체가 분리되면서 우리의 마음도 육체로부터 사실상 분리된다. 

흔히 사람들은 잠에 빠질 때 별난 방식으로 뭄을 움찔거리는데 이런 경련은 유체를 육체로부터 너무 거치게 분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거의 모든 사람은 밤마다 유체 여행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자신의 저급한 육체로 돌아오고 나면 그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 잠이 들 무렵에 어딘가로 떨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이떨어지는 기분은 사실경련으로 인해서 갓 떠오르던 유체가 육체 속으로 곤두박질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상에 무엇인가 배우러 왔고 그것을 배우고 나면 지상의 구속에서 자연히 벗어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이생에서 얻는 지식을 다음 생으로 가져간다. 그것이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저편으로 가치 있는 지식을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무분별한 사고의 잡동사니들을 가져갈 것인지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략------------

그의 가르침은 명상, 수행, 구도, 영적 능력 등에 관한 것이며, 인간의 본질과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롭상 람파는 20세기 초 티베트 귀족 가문의 계승자로 태어나 고승의 환생자로서 어린 나이에 착포리 승원으로 출가했습니다.

그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유럽, 미국 등을 거쳐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접하고, 영국인 시릴 호스킨과 몸을 바꾸는 '영혼이주'를 통해 서양인이 되었습니다.

롭상 람파가 몸을 바꾼 과정은 '영혼이주'라고 부르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티베트로 돌아가기 위해 영국인 시릴 호스킨과 만나서 서로의 몸과 영혼을 바꾸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윽고 약속된 날에 시릴 호스킨은 이전에 떨어졌던 나무에서 다시 추락하여 뇌진탕을 일으키고, 이때 호스킨의 유체와 롭상의 유체가 본래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서로의 몸으로 진입하는 ‘영혼이주’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롭상 람파는 영국인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롭상 람파의 가르침은 명상, 수행, 구도, 영적 능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안 읽고는 못 배길 진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는 인류가 진화와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자신의 주파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켜라고 조언합니다.